돌나래

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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无爲堂別曲 26 - < 흔들리는 것들 >

며칠 사이 급증하는 확진자들로 그나마 조용하던 지역의 분위기가 낙엽이 쓸려가는 골목처럼 썰렁하기만 하다 보이지 않는 동선 거미줄에 엮인 사람들은 수 백명 보건소 앞에 줄서서 가슴까지 떨고, 거칠어지는 마음들 아는지 모르는지, 눈이 내린다! 깎이고 마르면서 드러내는 산벚나무 속살은 언제나 섞이지 못하면서도 함께 굽이쳐 흐르는 밝은 모래밭과 짙고 깊은 강물 색을 띠고 있다 보이지도, 있지도 않은 相을 쫓다가 모진 세월의 거미줄에 사지 꽁꽁 걸린 채 인연에 시린 깃발처럼 흔들리는 건 무엇일까? 펄럭이는 깃발인가? 소리로 요동치는 바람인가? 그 모양 바라보는 마음이던가? - 不取於相 (상에 집착하지 말고) - 如如不動 (변함없이 흔들리지 말라) 산벚나무 짙은 갈색 물결 위에 조금도 가벼울 수 없는 여덟 글자 파..

无爲堂別曲 25 - < 천당이 코앞에 >

거의 한 주일 내내 백 스물 다섯의 한자와 세 개의 낙관을 칼끝으로 새기며 읽고 또 읽었다 - 心平何勞持戒 (마음이 태평한데 계戒가 무슨 소용이랴!) 이따위 짓거리로 어찌 마음 태평하고 은혜와 효양과 의리를, 겸양과 인내와 충언의 의미를 알며 나무가 비벼서 불씨를 얻고 붉은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깊은 섭리를 칼끝만큼이나 깨닫게 되겠냐마는 가끔은 끊어질듯 펴기 힘들어지는 허리와 밤새 남아도는 팔꿈치의 뻐근함 만으로도 보리(깨달음)는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함을, 언어의 참뜻은 배우고 새기고 써대며 박제된 내 언어의 초라한 껍데기, 저 너머에서 다시 찾아 헤매고 또 헤매라는 慧能 대사의 揭, 그 108字의 가르침을 정갈한 붓끝으로 써내린 무위당의 글씨 새김으로 후들거리는 온몸에 그저 받아 놓는..

无爲堂別曲 24 - < 두려워하라! >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누구의 화려한 압승인지, 참혹한 패배인지 모를 선거가 온갖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고 또 지나갔다 시민을, 국민을, 나라를, 민주주의를 위해 분골쇄신을 다짐하며 넙죽 엎드려 절하던, 길거리마다 펄럭이던 그 빛나는 이름, 이름들 수십 년을 아프고 허망하게 또 속으면서도 재삼 진솔한 기도의 마음으로 투표한 사람들에게 그 이름들이 돌려줄 수 있는 무언가 있기는 한 걸까? 어쩌면 필부의 지난 세월도 모두 그 허접스런 이름 하나 허공에 매달아보려고 꼴사납게 저리 버둥거린 게 아닐까? - 猪怕肥 - 人帕出名 猪怕肥 (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무위당의 서화 중 심하게 거친 붓 흔적을 남긴 를 산벚나무에 음평각으로 새겨 걸다 몇 달째 온 ..

无爲堂別曲 23 - < 밥 한 그릇 >

"풀 한 포기 돌 하나, 나락 한 알도 땅과 하늘이 없으면, 우주 없이 될 수 있느냐 말이예요. 바로 그 나락 한 알이 하늘이다, 이거야! 나락 한 알에 우주가 함께 하신다고, 그러니 우리가 다 한울이 한울을 먹고 있는거란 말이지." - 밥이 하늘이라! 수운 최제우와 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에서 생명운동의 철학적 뿌리를 길렀다는 무위당의 강연록을 애써 뒤적거려 옮겨보고, - 一碗之食 含天地人 일완지식 함천지인 (밥 한 릇에 우주가 담겨 있다.) 선생의 밥 철학을 조금은 깊은 칼질로 산벚에 새기다! 제발 참으라는데 악착같이 모여 기도하다 함께 병들고, 어느 나라에서는 휴지 다툼에 칼부림이 일고, 멈추지 못하는 저 탐욕의 기표들, 그 끝이 어디일꼬? 하루 한 끼 학교 급식이 제대로 먹는 밥이었는데 또 미루어지..

无爲堂別曲 22 - < 소박함의 경지 >

- 초심자의 공통된 병은 - 무명, 아만, 질투, 장애, 탐진치와 애착, 게으름과 먹기, - 옳고 그름과 나와 남을 구분하는 것 등이 가득한 - 망상과 습기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의 근대 역사를 바꾸었다는 許雲 대사의 말씀 한마디가 내면의 房 깊숙한 저울질을 가르친다 지식을 다소 쌓았다고 하여 곧 아무런 이해도 없이 멋진 구절을 베껴 옛사람의 깊고 넓은 뜻을 자신이 이해한 것으로 삼으면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양 큰 '아만심'을 내는 얄팍함 그러다 큰 병이나 난관을 만나면 곧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하며, 죽음에 임박하여서도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니… 평생 지식으로 이해하고 배운 갖가지 기교나 그 작은 성공들은 조금도 소용이 없으니, 깨닫고 후회해도 그때는 이미 늦다는 것! 초심자의 쉬움은 무엇..

无爲堂別曲 21 - < 빈 배가 되라! >

며칠 내내 어쩌면 살갗처럼 익숙했던 울타리 안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만남과 얘기로 시간 쪼개기를 했다 아직도 완고한 벽들이 어느 순간 그림자의 의미로 성큼 다가설 때마다 내 발목 한쪽은 울타리 밖에 서 있음을 보다 그래서일까? 전엔 그냥 시리기만 하던 가슴이 이제는 더 선명하게 베어내는 아픈 느낌, 나이 들며 낯선 시선 점점 깊어짐을 알겠더라! 벌써부터 별러오던 '82년생 김지영'을 날씨만큼 듬성한 아침 영화관에서 보다가, 두어 번이나 대책 없이 눈물을 훔치다니… 영화는 수십 년이나 더 젊은 김지영이 아니라 환갑을 넘어선 김필부의 너덜거리는 세월을 양파 껍질처럼 벗겨내고 있었다! 그냥, 눈물겨웠더라! -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곳에 - 어느 누구도 아닌 자만이 남아 있다. - 그때 그대는 자신이 - 어느 ..

无爲堂別曲 20 - < 본래 같은 것 >

인간사 모든 것이 각자가 가진 '言語'로 표현되고 언제나 미끄러지고 마는 그 기표와 기의 때문에 어쩌면 끝까지 疏通의 제맛 보지 못하고 가는 건 아닐까? 수일 동안 극히 개인적인 사설을 꽤나 길게 주절거린 구차한 내 언어의 불투명한 색과 허접한 무게에 가위눌린 어린아이처럼 치졸한 새우잠 들고 깨다가 오늘 아침, 내 가난한 백수의 마당을, 어쩌면 지우개 밥 아래 겨우 끄트머리만 남은 유년의 싸리비 하나 끄집어내어 썩썩 쓸어 낸다! 그리고, 관계의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여전히 물기 가득 머금은 안개 자욱한 또 다른 시간의 밖으로 한발 성큼 내딛어 본다 소소하게 흔들리는 마음 닿는 거기에 풀숲 우거지고 이슬 후두둑 떨어지는 좁은 길에 유무색공 벗어놓고 간 그림자 하나 있을까 싶어서 지난 두 해 내내 고성 드..

无爲堂別曲 19 - < 청산에 살라하고 >

-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이 - 눈먼 거북이 넓은 바다에서 나무토막을 만나는 - 맹구우목(盲龜遇木)처럼 어려운 일이므로… 몸과 입과 뜻을 항상 경계하는 수양을 돕기 위해 썼다는 '野雲' 스님의 '자경문' 10가지 경책은 엄격하다 못해 등허리가 뻑뻑해질 지경이다! 그 첫 번째 門, -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은 결단코 받아 쓰지 말라. 이 엄격한 경계의 게송을, 无爲堂은 그저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이 툭 떨어지는 소리처럼 아주 무심한 모양의 글씨로 툭툭 가슴에 던져놓고, '결단코'의 여부를 하늘의 힘으로 지키려는지 앙가슴 팔짱을 낀 모습의 완고한 난초 이파리와 단 한 줄기 꽃대 끝에서 부릅뜨고 지켜보는 꽃눈을 그렸다! - 菜根木果慰飢腸 (풀뿌리와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 달래고) - 松落艸衣遮色身 (송락과 ..

无爲堂別曲 18 - < 하늘바다 >

거칠게 그은 굵은 먹 한 획의 등어리로 아직도 거센 물방울의 포말이 흐르고, 서쪽 하늘 어귀쯤에서 가슴 삭이며 천천히 밤을 밝히던 빛을 지우고 있는 달 - 水流元在海 수류원재해 - 月落不離天 월락불이천 ( 강물은 흘러도 바다에 있고 달은 져도 하늘을 벗어나지 않네! ) 거친 선 몇 개와 허공을 흘러내리는 글씨 외엔 온통 하얀 여백으로 채워진 무위당의 이 서화 앞에서 몇 번 머뭇거리다가 온몸을 스스로의 무늬로 휘감고도, 오히려 그 결을 따라 함께 조용히 흐를 줄 아는 느티나무의 강한 끌림에 두꺼운 칼을 들었다! 깊고 둔탁한 칼끝으로 바다에 이를 때까지 기우는 달은 자꾸 하늘 끝에 파랗게 걸리고 병상에서 흘려 쓴 무위당의 글씨는 비가 되어 내렸더라 실체–양태–연장, 사유–속성-자연, 에티카로 귀환한 스피노자..

无爲堂別曲 17 - < 얼싸안기 >

두 팔을 하늘처럼 벌려 최대한 반갑게 어깨가 덮히도록 안아주는 것을 '(감)싸안기'라 한다면 마음 방 밑바닥에 고여있던 공감의 흐름이 서로 닿은 온몸의 세포를 통하여 낯설었던 영혼까지 질척하게 적시도록 끌어안는 것을 '얼싸안기'라… 누군가가 얘기하더이다! 얼마 전에, 그저 나무 향과 이름에 혹하여 애써 주문하여 세심하게 다듬고 칠해 두었던 편백나무는 속 깊이 친해지기 참으로 어려웠다 해말간 복숭아처럼 뽀얗고 깨끗하던 나무가 바탕칠을 조심스레 두어 번 하자 숨어있던 주황색 무늬가 어지럽게 도드라지더니, 깔끔해 보이는 감촉만큼 믿었던 육질마저 식어 굳은 두부의 살결처럼 무르고 약해서 쇠로 된 칼끝을 함부로 대고 두드리는 손짓을 쉽게 허락하지 않아, 한숨 몰아쉬며 멈추기 여러 번… 그래서 골랐을까? 사시사철 ..

无爲堂別曲 16 - < 난초의 얼굴 >

들꽃 한 송이에 부끄러워하더니, 달 속에서 나를 찾고 내 속에서 달을 찾는다! 고즈녘히 내리감은 눈빛 꽃 아래 세상을 고이 품으려는 蘭 이파리 팔을 아름 벌리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오랜 세월의 붓끝에서 나온 독특한 표정의 그의 난초를 '얼굴 蘭', 혹은 '인물 蘭'이라 부른 것은... - 사회에 밀접하면서도 매몰되지 않고, -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고, - 밖에 있으면서 인간들 무리 속에 있고, - 구슬이 진흙탕에 버무려 있으면서도 나오면 - 그대로 빛을 발하곤 하는 - 그런 사람이 이제 없겠죠! 암담한 시대에 장일순을 사숙했다는 지식인 '리영희'의 솔직한 회고를 은행나무 결 안에, 다시 새겨본다 - 이것을 누가 알까?

无爲堂別曲 15 - < 욕망의 찌꺼기 >

'소설 쓰네!'라는 말로 생긴 투닥거림이 황당하게 피식 웃기는 잠시를 넘어 어이없는 분노와 한심한 슬픔으로 다가서는 날 어디선가 이미 장사지낸 지 오래되었다는 이 땅의 문학, 꽤나 근친했던 소설의 시체라도 찾듯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 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결과다 - 어쨌든 세상은 아주 조금씩 나아져 간다 30 년 동안 엄청난 자료와 생각을 준비하고,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이 장편소설을 채워 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겠다고 큰마음 먹었단다! 애초에 미천한 재주가 모자라 버겁기도 했지만, 알량한 욕망의 기표에 매달려 되쟎이 써 갈기는 소설가 되기를 포기한 건 가난한 내 삶에서 썩 잘한 일이다! - 天地與我同根 (천지가 나와 더불어 같은 뿌리요) - 萬物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