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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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놀이 102 - < 슬픈 날엔… >

1909년 터키의 어느 천문학자의 망원경에 딱 한 번 포착되었다는, 작은 혹성 B612 에서 철새를 이용해 떠났을 것으로 짐작되는 꼬마… 사하라 사막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는 비행사 생텍쥐페리의 얘기, 는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된 텍스트라고 한다 - 이 동화처럼 살지 못하는 수억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 - 종교가 민중의 아편(칼 마르크스)이고, -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들의 아편(레몽 아롱)이라면, - 는 어른들의 아편이다. - 에 '길들여진' 수억의 어른들이 이 책을 읽는다. 최근(2021, 봄), '프랑스어에 완전히 밀착한 한국어'로 이 책을 다시 번역한 어느 작가의 서문 구절에 격하게 공감하며 다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여우와 처음 만난 어린 왕자가 '길들이다(apprivorser)'가..

나무놀이 102 - < 말을 잊은 사람 >

조금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달력을 익숙한 壁에 바꾸어 달며, 잠시 색깔도 없는 세월의 무게에 휘청하다 그예, 지난 한 해도 바락바락 허공에 매달려 고기 비늘처럼 낡은 통발 꿰매며 지냈는가 토끼 털 빼곡한 올가미를 두 손에 부여잡고 있었던가 의미도 흐릿한 탈색된 말(言) 조각 아껴 쌓았는가... 작은 은행나무 판대기 하나 또 다른 거울 삼아 석양 강가에서 너울 너울 헛춤추는 그림자따라 莊周의 혹독한 한탄을 작게, 작게 새겨보다 -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전자소재이어, 득어이망전 -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제자소이재토, 득토이망제 -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 언자소이재의, 득의이망언 - 吾安得夫忘言之人而與之言哉! 오안득부망언지인이여지언재! (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이니..

나무놀이 전시회 - < 어떤 向我設位 >

한 해의 말미 열흘 이상을 흔적을 벽에 걸고, 다시 매일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꽤나 뻐근하고 묵직하게 지냈다! 아직은 채 지워지지 못한 보이지 않는 끈들의 온기였을까? 덕분에 반가움과 고마움을 섞을 수 있는 따뜻한 응원들을 챙기며 그런대로 마무리한 것 같은데 전시 철거와 더불어 일부 작품들을 바로 으로 옮겨 또 다른 마음, 또 다른 방식으로 설치하면서도... 내내 나를 흔들고 있는 선명한 삽화를 지울 수 없었더라! 대관령 동쪽에 한밤새 갑작스런 폭설과 한파 오던 날, 애써 '키타로의 대황하'를 묵직하게 깔아놓고 아무도 오지 않는 전시장을 오롯이 혼자 돌아보던 오전 두어 시간의 가슴 시리도록 진기했던 느낌이란... - 向我設位 ! 하얀 삼면의 벽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나무판들, 그 갖가지 색깔, 무늬..

나무놀이 09- < 夏至에 봄놀이 >

62년 만의 폭염이 서울을 삶아먹고 바다와 바람있는 여기도 하지답게 숨막히도록 더웠다! 이 불볕 찜통에도 어김없이 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리고 애꿎은 눈빛만 허덕이는 군상... 바이러스가 쏘아올린 뉴 노멀, 수 십년 이어졌던 자연의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만했던 탓이란다 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한 여름 날에 엉뚱하게도 봄 얘기를 가지고 나무와 도란도란 칼놀음으로 놀다! 공방에서 준 느릅나무 연습목이 못내 아까워 어느 가난한 선비가 남겼을 듯한 글씨 빌어 '入春大吉' '建陽多慶'을 앞뒤로 새겼다 부디 이 재난의 시절이 훌쩍 지나고 櫛風沐雨하는 계절, 嚴冬雪寒을 돌고돌아 이런 목판 걸어둘 수 있는 무상한 봄날이 어김없이 또 오기를... (2020. 06.)

나무놀이 08 - < 하늘의 물레(天鈞) >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名實의 도토리 저울로 원숭이와 놀던 조삼모사 狙公은 오간 데 없고, 물레(鈞) 한가운데 흙덩이 하나 올려놓고 가지런히 발질하던 陶公 또한 보이지 않는데 허연 머리 곧추 세우고 지그시 가늠해 봐도 한참 찌그러져 보이는 어지러운 세상 저 쪽으로 여전히 바이러스 잔뜩 먹은 해가 저문다 두 해가 넘도록 무게도 물기도 스스로 버린, 은근한 무늬에 울림좋은 산벚나무 만나서 들쑥날쑥 오밀조밀 한 열흘 화통하게 놀았다! 허접한 맘 다잡아 파고 또 새긴 저 깊은 문 아침 활짝 열고 햇살 뒤로 성큼 나서면, 자연의 조화(天鈞) 안에서 편안해젔다던 그들 빛바랜 그림자라도 잡을 수 있을까? 행여나 말이다

나무놀이 07 - < 이 뭣고? >

사물 혹은 인물과 풍경의 중첩된 양면성을 너무나도 정교한 이미지 속에 숨기고 묻는 살바도르 달리의 숨막히는 작품에 빠져서, 배치와 융합과 전이의 뒤섞인 의미를 선명한 이미지의 배합으로 다시 물어오는 르네 마그리트의 깊어지는 질문에 쫓기며 가끔은 가차없이 내려서고만 싶었던 이 오묘하고 비루한 행성, 지구별의 그림자와 누구에게 캐묻거나 어디에고 찾을 수 없었던 '나 我'의 연유와 근본을 여기에 또 묻는다 - 父母未生前 (부모 이전에 '참나'는 어디에?) - 不與萬法爲如子 是心麽人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가 누구인가, 이 뭣고?) - 什麽物 恁麽來 (무엇이, 어떻게 왔는고?) 석두선사의 입을 틀어막았다는 마조 스님의 한 마디, 6조 혜능대사가 처음 만난 남악회양에게 던진 물음, 나의 근본, 참 성품을..

나무놀이 06 - < 어떤 이름찾기 >

당신을 위한 제사는 지내지 말라하고 세상 소풍 끝낸 아버지가 떠나신 후 중학생 때부터 수십 년 혼자 지켜오던 얼굴 모르는 어머니의 제사도 함께 접었다 그리곤 한 해 두 번 설날과 추석 차례상 머리에 두 분의 60년 상봉을 의미하는 지방을 한 장에 나란히 써서 붙여드리기로 했는데... - 顯 考 學 生 府 君 神位 - 顯妣孺人密陽朴氏 神位 도대체, 이 나라의 전통 지방 속에서 죽어서도 공부가 모자라는 저 남자는 누구이며, 허다한 밀양박씨 중에 누가 이 어미인고! 어쩌다 참으로 신박한 밤나무 위패 만났으니 전통 제례 양반 양식 차포 다 떼어 버리고 평생 운명처럼 불리웠던 고유한 이름 석자를 고스란히 찾아 짙게 새겨 드리기로 하였더라! - 故 金景一 神位 - 故 朴東汝 神位 "모든 일체가 내 안에, 또 네 안..

나무놀이 05 - < 하얀 마음 >

삼십 년 전 내 몸뚱이의 어두운 구석에서 알 수 없는 그(病)가, 운명의 눈을 처음 뜨고부터 모든 일상과 사유를 넘어 무의식의 바다까지, 우리는 살아있음의 의미에 대하여 혹독하게 싸워 왔다 아슴한 기억의 그림자까지 잃어버리고 마는 레테의 강을 네 번쯤 넘나들며 풀잎처럼 깨어날 때마다 뼈마디가 아리도록 무언가를 부여잡았던 손을 펴면 야윈 손가락 사이로 유년의 모래알처럼 흘러내리던 텅 빈 손바닥에 무게도 없는 허망함만 남기고 서둘러 의식의 저편으로 빠져나간 그것! 이후 세월이 이슥해지도록 거울이 된 그와 보대끼면서 가끔, 혹은 언제나 그리움처럼 아쉬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혹, 오래 전부터 거울이 된 그와 알량한 목숨의 사이 그 선명한 경계를 잊지못해 하얗게 탈색된, 너덜거리는 내 마음이 아닐까? - ..

나무놀이 04 - <莊子의 길>

온전하게 허허로운 백수가 되고싶어 일찍이 초등교사라는 출근의 옷을 벗고, 서른 해가 넘도록 莊周의 도포자락 부여잡고 구름 밟는 걸음으로 을 간 사람이 있었다 - 懷 趙熙均 先生 (조희균 선생을 그리며...) - 풀잎사람 @ hanmail.net 오늘도 안목 바닷가 한쪽 백사장에 비스듬히 앉아 "바다는 받아주지 않음이 없다"고 낮게 읊조리며 胡蝶의 꿈에 젖어 있는 그를 금방 찾아낼 것 같은 뜨끈하고 아련한 아쉬움과 그리움 피어나 그가 남긴 책 을 또 다시 읽으며 자꾸 지워지는 마음 흔들어 은행나무에 새겼다 -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알 수 없구나,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가?) - 胡蝶之夢爲周與 (나비가 지금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깊은 자책과 오랜 무의미를 반추하면서도 머지않아 다가올 ..

나무놀이 101 - < 가시나무 >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수 십 년을 그저, 끊어질듯 아련한 멜로디가 좋아서 듣던 노랫말이 이리도 복잡하고 어둡도록 아픈 것이었는지는 얼마 전까지 명주동 네 거리 모퉁이에 있던, 온통 담쟁이 덩굴로 벽이 덮혀버린 커피집, '풍경'의 안쪽 벽에 걸려있던 그림 한 장에서 읽었더라! 그리고, 동학과 해월의 '人乃天'을 만났을 때도, 무위당 장일순의 '人中天地' 서예를 접했을 때도, 천부경의 '人中天地一'을 다시 뒤적일 때도... 그 그림은 낡은 필름처럼 몇 번이고 필부의 뒷통수 스크린에 또 다르게 그려지고 그때마다 조성모의 노래를 찾아 들어야 했던가? - 나, 너, ..

나무놀이 101 - < 잃어버린 그것 >

아이는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엇일까? - 아이에게는 무지식이라고 하는 - 무사기 無邪氣 라고 하는 자질이 있다. 아이는 놀라움으로 사물을 본다. 그의 눈은 참으로 명랑하다. 그는 사물을 더듬어 본다. 그에게는 어떤 편견도, 판정도, 선험적인 관념도 없다. 그들은 투영시키는 법이 없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있는 그 자체'를 알기에 이르는 것이다. 인간은 지식 때문에 타락했다. 알면 알수록 거리는 멀어진다. 알지 못한다면 거기에는 거리가 없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다리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구 無垢한 눈으로 보라! 세상만사를 모르고 노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色과 空이 무슨 구분 있을꼬? -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며, - 느낌과 생각과 의지 작용과 의식도 ..

나무놀이 외전 - < 裸木의 豊饒 >

2단계에서 끊지 못해 2.5 단계, 연일 천 명을 넘나드는 확진 돌파에 일상을 더 묶어 놓는 3 단계 선포 고려 중 끊어지지 않는 은색 거미줄 그물이 무디어지는 위험 감각과 깊어지는 불신을 먹고 속수무책의 인간 세상을 점점 더 옥죄어 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증식도 그러하지만 거리두는 몸뚱이보다 더 깊은 의심의 눈초리로 사금파리 조각처럼 깨어져 떨어지는 마음들이 서럽다! 역병을 퇴치하고 백성을 구휼해야 할 무리들은 오늘도 겨울 나목의 碩果 빼앗아 먹기에만 골몰하니 사람사는 세상 숲을 이룰 새순은 어디서 솟아날꼬? 누군가 보여주었던 사진 한 장, 눈 내리는 벌판에 앙상한 가지 벌거벗은 모습으로 너무도 당당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고, 쇠귀 선생의 감옥 사색을 더듬는다! - 계절이 되면 스스로 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