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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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놀이 03 - <불이선란 不二禪蘭 >

담묵의 몇 안되는 필선으로 그린 한 포기의 蘭, 잘 그리려고 애쓴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붓 가는대로 맡겨진 蘭 모습의 흔적... 부실한 蘭 주위 여백에 추사 특유의 강건 활달하고 서권기 넘치는 필체로 써 넣은 한자 제발이 네 개나 빽빽하게 붙어있어 흔히 말하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예 작품인 것처럼 보이는 괴팍한 작품이다! *************************************************** 추사는 일명 에서 蘭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자신의 심회를 네 개의 화제를 통해 드러내었다고 한다. -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若有 人强要爲口實 又當以毘耶 無言謝之 曼香 (불작난화이십년 우연사출성중천 폐문멱멱심심처 차시유마부 이선 약유 인강요위구실 ..

나무놀이 02 - < 歲寒然後에야...>

대상을 단순하게 묘사하는 기법보다는 心意를 드러내는 간결한 필법과 枯談한 묵법을 중시, 예서를 쓰듯이 화가의 뜻을 담아내야만 맑고 고결하며 예스럽고 아담한 그림이 될 수 있다고 했단다! 지난 해부터 영혼 해맑은 지인의 도움으로 새삼 한국화의 긴 흐름과 깊이를 가늠하는 공부 중, 秋史의 글과 그림은 온몸을 관통하는 떨림이다... 둥근 창이 뚫려 있는 소박한 집과 잎이 성근 해묵은 노송, 푸름을 간직한 곰솔 세 그루를 그린 간결한 구도로 갈필과 담묵만을 구사한 조촐한 그림 - 歲寒圖 제주도 귀양살이 동안 藕船 李尙迪이 변함없는 사제간의 정으로 해마다 북경에서 책을 구해 보내줌에 감동하여 그림을 그리고 라 이름지어 보냈다는 사연 반듯한 예서체로 쓴 '세한도' 화제와 강인한 추사체로 쓴 그림의 내력이 품은, 손..

나무놀이 01 - <5☆년생 김필부>

며칠 내내 어쩌면 살갗처럼 익숙했던 울타리 안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만남과 얘기와 시간 쪼개기를 했다 아직도 완고한 벽들이 어느 순간 그림자의 의미로 성큼 다가설 때마다 내 발목 한쪽은 울타리 밖에 서 있음을 보다 그래서일까? 전엔 그냥 시리기만 하던 가슴이 이제는 더 선명하게 베어내는 아픈 느낌, 나이들며 낯선 시선 점점 깊어짐을 알겠더라! 벌써부터 별러오던 '82년생 김지영'을 날씨만큼 듬성한 아침 영화관에서 보다가, 두어 번이나 대책없이 눈물을 훔치다니... - 존재와 실체의 의미가 투명하도록 - 철저하게 구조화 된 무의식의 현시, - 그 속절없는 상징계 기표들의 미끄러짐! 영화는 수 십년이나 젊은 김지영이 아니라 5☆년생 김필부의 너덜거리는 세월을 양파 껍질처럼 벗겨내고 있었다! 그냥, 눈물겨웠더라..

祝賀烙畵 - < 白水散人 尹秉彦 先生 >

- 无爲堂의 길 : 石羽別曲 - 祝 石羽書刻展 謹鑑奉呈 白水散人 - 抱一淸淨 不移其心 四時靑靑 / 无爲堂 ( 无爲堂의 가르침을 기리어 새기신 石羽의 기운이 四時靑靑하기를 祝願함! ) : 태백 준령의 힘 있고 아름다운 기운이 울산바위 아래로 흐르다가 차분하게 고인 곳, 설악산 도문동 [多樂齋]에 날개 접은 鶴처럼 사는 白水 尹秉彦 先生이 마음 깊은 응원을 보내오다. 내게 의 妙를 안내해주었던 그가, 이번엔 더 세심한 공력으로 을 데리고 무위당의 까지 품은 인두화 한 폭으로 또 몇 날을 지샜나 보다! 무위당에 대한 필부의 오마주를 따뜻하게 지켜보며 늘 시린 어깨를 감싸주던 白水의 두터운 우정을, 이 스산한 계절이 이슥하게 지나도록 오래 오래 동쪽 벽에 걸어두리라.

別曲外傳 8 - < 하늘의 물레(天鈞) >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名實의 도토리 저울로 원숭이와 놀던 조삼모사 저공狙公은 오간 데 없고, 물레(鈞) 한가운데 흙덩이 하나 올려놓고 가지런히 발질하던 도공陶公 또한 보이지 않는데 허연 머리 곧추세우고 지그시 가늠해 봐도 한참 찌그러져 보이는 어지러운 세상 저쪽으로 여전히 바이러스 잔뜩 먹은 해가 저문다 두 해가 넘도록 무게도 물기도 스스로 버린, 은근한 무늬에 울림 좋은 산벚나무 만나서 들쑥날쑥 오밀조밀 한 열흘 화통하게 놀았다! 허물어지는 맘 다잡아 파고 또 새긴 저 깊은 문 아침 활짝 열고 햇살 뒤로 성큼 나서면, 자연의 조화(天鈞) 안에서 편안해졌다던 그들, 빛바랜 그림자라도 잡을 수 있을까? 행여나 말이다

別曲外傳 7 - < 이 뭣고? >

사물 혹은 인물과 풍경의 중첩된 양면성을 너무나도 정교한 이미지 속에 숨기고 묻는 살바도르 달리의 숨 막히는 작품에 빠져서, 배치와 융합과 전이의 뒤섞인 의미를 선명한 이미지의 배합으로 다시 물어오는 르네 마그리트의 깊어지는 질문에 쫓기며 가끔은 가차 없이 내려서고만 싶었던 이 오묘하고 비루한 행성, 지구별의 그림자와 누구에게 캐묻거나 어디에고 찾을 수 없었던 '나 我'의 연유와 근본을 여기에 또 묻는다 - 父母未生前 (부모 이전에 '참나'는 어디에?) - 不與萬法爲如子 是心麽人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가 누구인가, 이 뭣고?) - 什麽物 恁麽來 (무엇이, 어떻게 왔는고?) 석두선사의 입을 틀어막았다는 마조 스님의 한 마디, 6조 혜능대사가 처음 만난 남악회양에게 던진 물음, 나의 근본, 참 성..

別曲外傳 6 - < 하얀 마음 >

삼십 년 전 내 몸뚱이의 어두운 구석에서 알 수 없는 그(病)가, 운명의 눈을 처음 뜨고부터 모든 일상과 사유를 넘어 무의식의 바다까지, 우리는 살아있음의 의미에 대하여 혹독하게 싸워 왔다 아슴한 기억의 그림자까지 잃어버리고 마는 레테의 강을 네 번쯤 넘나들며 풀잎처럼 깨어날 때마다 뼈마디가 아리도록 무언가를 부여잡았던 손을 펴면 야윈 손가락 사이로 유년의 모래알처럼 흘러내리던 텅 빈 손바닥에 무게도 없는 허망함만 남기고 서둘러 의식의 저편으로 빠져나간 그것, 이후 세월이 이슥해지도록 거울이 된 그와 보대끼면서 가끔, 혹은 언제나 그리움처럼 아쉬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혹, 오래전부터 거울이 된 그와 알량한 목숨의 사이 그 선명한 경계를 잊지 못해 하얗게 탈색되어 그림자처럼 너덜거리는 내 마음이 아..

別曲外傳 5 - < 莊子의 길 >

온전하게 허허로운 백수가 되고 싶어 일찍이 초등교사라는 출근의 옷을 벗고, 서른 해가 넘도록 莊周의 도포 자락 부여잡고 구름 밟는 걸음으로 을 간 사람이 있었다 - 懷 趙熙均 先生 (조희균 선생을 그리며...) - 풀잎사람 @ hanmail.net 오늘도 안목 바닷가 한쪽 백사장에 비스듬히 앉아 "바다는 받아주지 않음이 없다"고 낮게 읊조리며 胡蝶의 꿈에 젖어 있는 그를 금방 찾아낼 것 같은 뜨끈하고 아련한 아쉬움과 그리움 피어나 그가 남긴 책 을 또다시 읽으며 자꾸 지워지는 마음 흔들어 은행나무에 새겼다 -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알 수 없구나,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가?) - 胡蝶之夢爲周與 (나비가 지금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깊은 자책과 오랜 무의미를 반추하면서도 머지않아 다가올..

別曲外傳 4 - < 가시나무 >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수십 년을 그저, 끊어질 듯 아련한 멜로디가 좋아서 듣던 노랫말이 이리도 복잡하고 어둡도록 아픈 것이었는지는 얼마 전까지 명주동 네거리 모퉁이에 있던, 온통 담쟁이덩굴로 벽이 덮혀 버린 커피집, '풍경'의 안쪽 벽에 걸려있던 그림 한 장에서 읽었더라! 그리고, 동학과 해월의 '人乃天'을 만났을 때도, 무위당 장일순의 '人中天地' 서예를 접했을 때도, 천부경의 '人中天地一'을 다시 뒤적일 때도... 그 그림은 낡은 필름처럼 몇 번이고 필부의 뒷통수 스크린에 또 다르게 그려지고 그때마다 조성모의 노래를 찾아 들어야 했던가? - 나, 너, 우..

別曲外傳 3 - < 잃어버린 그것 >

아이는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엇일까? - 아이에게는 무지식無知識이라고 하는, - 무사기無邪氣 라고 하는 자질이 있다. 아이는 놀라움으로 사물을 본다. 그의 눈은 참으로 명랑하다. 그는 사물을 더듬어본다. 그에게는 어떤 편견도, 판정도, 선험적인 관념도 없다. 그들은 투영시키는 법이 없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있는 그 자체'를 알기에 이르는 것이다. 인간은 지식 때문에 타락했다. 알면 알수록 거리는 멀어진다. 알지 못한다면 거기에는 거리가 없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다리 노릇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구無垢한 눈으로 보라! 세상만사를 모르고 노는 아이들에게 도대체 色과 空이 무슨 구분 있을꼬? - 물질이 곧 空이요 空이 곧 물질이며, - 느낌과 생각과 의지 작용과 의식도..

別曲外傳 2 - < 유마의 침묵 >

몇 안되는 담묵 필선으로 그린 한 포기의 蘭, 잘 그리려고 애쓴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붓 가는대로 맡겨진 蘭 모습의 흔적… 부실한 蘭 주위 여백에 추사 특유의 강건 활달하고 서권기 넘치는 필체로 써넣은 한자 제발이 네 개나 빽빽하게 붙어있어 흔히 말하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예 작품인 것처럼 보이는 괴팍한 작품이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서각으로 새겨보는 일은 평소에 푹 빠지듯 덤벼드는 속도를 낼 수 없어서, 두 주일 이상을 또닥거리며 천천히 흔들릴 수 있었더라! 허술한 담채의 蘭 이파리 끝에서 심기 불편했고, 괴기한 추사체의 화제를 한 글자씩 두드려 새기고 확대경까지 동원해 먹을 넣고, 또 칠하면서… ‘不二’나 ‘維摩의 沈默’과 같은 경지를 말하고자 했던 秋史의, 어쩌면 오만함을 넘어선다는 ..

別曲外傳 1 - < 歲寒然後에야… >

대상을 단순하게 묘사하는 기법보다는 心意를 드러내는 간결한 필법과 枯談한 묵법을 중시, 예서를 쓰듯이 화가의 뜻을 담아내야만 맑고 고결하며 예스럽고 아담한 그림이 될 수 있다고 했단다! 지난해부터 영혼 해맑은 지인의 도움으로 새삼 한국화의 긴 흐름과 깊이를 가늠하는 공부 중, 秋史의 글과 그림은 온몸을 관통하는 떨림이다 둥근 창이 뚫려 있는 소박한 집과 잎이 성근 해묵은 노송, 푸름을 간직한 곰솔 세 그루를 그린 간결한 구도로 갈필과 담묵만을 구사한 조촐한 그림 제주도 귀양살이 동안 藕船 李尙迪이 변함없는 사제간의 정으로 해마다 북경에서 책을 구해 보내줌에 감동하여 그림을 그리고 라 이름지어 보냈다는 사연 반듯한 예서체로 쓴 '세한도' 화제와 강인한 추사체로 쓴 그림의 내력이 품은, 손보다는 머리와 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