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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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놀이 18 - < 나무거울 – 돌의 肖像 >

언제부터일까? 거울에 비친 얼굴을 슬슬 피하게 된 것이… 도대체 무얼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 새 차에 흠집이 나고, 아이는 다 자라서 독립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숨지고, 전혀 아프지 않던 곳이 아프고, 기억력도 결코 예전 같지 않다 … 87살에 위중한 병을 얻은 지인은 마치 20살 젊은이가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처럼 격렬하게 病에 항의하다가 떠났다 애써 외면하고 살던 을 새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날, 은근히 내 거울을 피했던 게 아닐까? - 無鑑於水 鑑於人 (무감어수 감어인) - 물(거울)에 비추지 말고 사람에 비추어 보라! 내 몸과 마음 을 제대로 알려면 사람에 비추어 보라는 의 경구조차 허접한 인맥으로는 마음 건네기 난감하여… 차라리, 거울보다 깊고, 사람보다 따뜻하게 은은한 색, 고..

나무놀이 17 - < 다시 ‘밥’– 허기진 세상 >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를 구축하는 기본 상식, 이해와 소통과 배려가 무참하게 지워진 도시의 뙤약볕 거리 가득 교사들이 모였다 - 학생에게는 학습권을, 교사에게는 교육권을! 어이없이 세상 등진 동료 교사들을 추모하는 수 십만의 분노와 호소가 하늘을 메우는데도 정작 답을 주어야 할 그네들은 귀와 입을 닫았다 철저한 무응답과 방향 잃은 폭력의 서슬에 몸도, 영혼도 지쳐 서서히 해체되는 날들, 사람다운 냄새 찾아 목 터지게 부르다가 허망한 메아리로 더 허기지는 세상 - 경천, 경인, 경물의 정신을 찾아 인간과 하늘, 사람과 자연이 同歸一體 사회로 인류, 지구촌을 구원할 수 있다던 无爲堂, 그 생명정신의 근본, 을 소환한다. - 한울은 사람에 의지하고 - 사람은 먹는데 의지하였나니 -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

나무놀이 16 - < 가로등지기 – 아름다운 직업 >

가로등 하나로 별과 꽃을 태어나게, 혹은 잠들게 하는 엄청 아름다운 직업, 아름다우니까 진실로 유익한 것이라 여겼던 그 존경스런 가로등 아저씨는, 해가 갈수록 빨라져서 이제는 1분에 1회전 하는 끔찍한 행성에서 바뀌지 않은 명령(?) 때문에 쉬지 못하는 노동자... 세 걸음만 걸으면 돌 수 있는 여기에선 아주 천천히 걷기만 해도 언제나 낮일테니 쉬고 싶으면 걸어가도록 하라는... 작은 아이의 친절한 제안에도 좋아하는 잠을 잘 수 없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여전히 가로등 켜고 끄기를 계속한다! - 그럼에도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았던 것은 - 아마도 남을 위한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고, - 그래서 친구로 삼고 싶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작은 아이는 하루에 1,440번이나 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그 축복..

마음드림 24 - < 그리움이 머무는 집 >

누구에게도 크게 인정받은 바 없고 스스로도 그러한 바 없는 아마추어 백수에게 가끔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작업 부탁이 올 때 참으로 여러 날 부끄러움으로 망설이다가, 그저 소박한 정성 담은 마음 새겨드린다는 소견으로 몇 날씩 더 골몰해보는 시간을 건너가곤 했다 얼마 전, 자기 문중과 조상을 지극히도 아끼는 어느 姓氏네 재실에 걸겠다는 대형 현판 부탁이 있어서 함께 서각 배운 지기의 응원 덕에 감행한 바 있는데… 멀리 거창에서 매끈한 은행나무 어렵게 구해오면서부터 근 한 달여, 유난히도 긴 시간을 여러 번 쪼개어 쓰며 과하다 싶은 정성을 쏟은 특별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오늘, 그 집안사람들 여럿 모인 자리에서 조금은 거창한 현판식을 거행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새삼 커다란 은행나무와 세심하게 어울려 놀..

마음드림 23 - < 심고 베푸는 뜻은? >

경포호수 건너 야산 줄기의 불탄 흔적이 죽은 구렁이의 껍질처럼 시꺼멓게 내려앉고 무심한 계절은 진초록 바람으로 물 위를 지나는데 제 기운을 찾지 못하는 몸의 구석에서 보내는 통증과 경고의 신호에 마음마저 잔뜩 눌린 몇 달, 칼과 망치를 잡는 손 매무새도 많이 무디어졌나 보다! - 種德施惠 종덕시혜 오래 묵은 菜根譚의 처세 警句를 그 의미만큼이나 묵직한 예서체로 눌러 쓴 지인의 작품, 하필이면 연하고 변덕 심한 편백 골라 새김 시작할 때 손끝에서 온몸으로 번지던 그 서투른 떨림을 어찌 잊을꼬! 그래서일까? 명나라 말기 홍자성(洪自誠)이 지은 이 어록집을 애써 뒤적거려 4字의 속뜻을 다시 읽게 된 것은… - 平民肯種德施惠(평민긍종덕시혜) 평민이라도 기꺼이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면 - 便是無位的公相(변시무위적..

나무놀이 15 - < 石羽 - 돌의 날개 >

헐렁하게 바람 숭숭 새는 시멘트 블록들을 무지막지한 욕망의 철조망으로 엮어 세운 누군가의 울타리 속에서 목소리 잘린 채 이리저리 시닥거리며 사육당한 것만 같은 이 나라밥 먹고 살던 생활 사십 삼년 육개월, 알량한 진심까지 약탈당하던 억울한 일상이 법률적 기한을 넘기며 마침표를 찍은 뒤 남쪽 큰 섬 서쪽, 팽나무 백 그루 있는 마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명월리에서. 작은 토담집에 코 박고 한껏 늘어지는 게으름으로 매일 오름과 곶자왈만 헤매며 한동안 살았다 새로 생긴 습관처럼 뒤적거리던 詩集 갈피에서 문득 어설픈 눈살에 붙들린 이성복의 詩 한 편, - 어쩌면 솟구쳐 오르다 - 멎어버린 파도였던가 어쩌면 평생 날개에 관한 의미라고는 희망이나 자유를 향한 힘찬 비상이기보다는 애절한 욕망의 끝에서 속절없이..

되새김 나무놀이 - < 또 다시 向我設位 >

작은 점 하나라도 찍을 수 있을까? 주변의 따뜻하고도 과한 응원에 기대어 열었던 ‘어느 백수의 되새김 나무놀이’가 어쩌면 한량없는 축복 속에 끝이 났다 ‘무위당 별곡’과 대작 ‘금강경’ 하나만 남기고 제각기 색과 무늬를 품은 40점의 이, 무위당의 낮은 삶과 좁쌀 한 알 속 우주를 보듬고 오래 되새김하려는 새 주인을 만나러 갔다 이동용 손수레에 한 더미 쌓아올린 포장 작품을 받는 이름 하나 하나 확인하여 등기 택배로 부치고 괜스레 두 손 탈탈 털며 돌아나오던 우체국 현관, 그 퍼렇게 더 깊어진 하늘, 허공 속에서 계절을 넘어서는 햇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 또 다시 向我設位 ! 가느다란 바늘, 기다란 화살, 시퍼런 비수처럼 온몸 구석의 세포마다 채곡채곡 박히던 알싸한 통증! 저절로 수그러지는 고개, ..

나무놀이 14 - <바오밥에게…>

- 어느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는 행성을 하나 알고 있었어 - 그 게으름뱅이는 작은 나무 세 그루를 내려려뒀다가… 이 행성의 어린아이들 머릿속에 꼭 박히도록 예쁜 그림 하나 그려보라는 어린 왕자의 설명에 따라, 사막에서 고장난 비행기의 어벙한 조종사가 아주 급박한 심정으로 고무되어 정성껏 그렸다는 게으름뱅이의 별, 그 웅장한 바오밥 나무들! - 어린아이들이여! 바오밥나무들을 조심해라! 오래전부터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위험에 둘러싸여 있었던 친구들을 위해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담아 그렸다고 하거늘… 아서라! 무딘 도끼질에 흠뻑 지친 오늘도 여전히 이 땅의 은밀한 곳에서 몸을 키우는 무시무시한 바오밥나무의 씨앗은 보이지 않고 장미나무처럼 보였던 새 줄기들은 하늘을 메운다 그들이 행성 전체를 차지하고 그..

나무놀이 105 - <一尺竿頭 - 삶의 벼랑>

얼마 전 그럴싸하게 키가 제법 되는 느티나무 골라 고층 건물 유리창 밖 허공에 매달린 빨간 조끼 노동자의 하염없는 모습 빌려 새기며 언제, 어디서든 이 되고 마는 가늠키 어려운 세상 끝자락, 그 아득함에 대해 속절없는 우울함을 혼자 툴툴거린 적이 있었다 - 백척이든, 일척이든… - 온몸으로 실려오는 삶의 벼랑 끝이라면 - 그 어둠과 아득함이 무에 다를 게 있을꼬? 왠지 눈앞에서 산뜻하게 지워지지 못하던 그 허공 중의 사내, 안간힘으로 뻗은 팔을 이참에 목련꽃 보이는 시방세계로 휘익 돌려 세우고, 며칠을 쓰다듬던 소품용 작은 산오리 나무에 기어코 无爲堂의 와 함께 다시 소환하였다 그리고는 마땅히 내딛어야 할 거친 한걸음의 의미를 30cm 키 작은 나무 허공에 곰상스레 새겨 넣으니 - 百尺竿頭須進步 백척간두..

나무놀이 105 - <길들이기에 대하여…>

눈이 내린다. 세상이란 이름으로 선명했던 온갖 형상이, 애써 기억하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어제도, 초록색 맑은 꿈으로 기다리는 내일도… 어쩌면 버젓이 뜬 눈으로 둘러보는 오늘까지도 모든 線이 하얗게 지워지는 여기엔, 없다! 느릿한 회색 얼룩으로 탈색되던 세월, 길게 혹은 짧게, 넓게 혹은 깊게 애써 나를 길들이고도 오늘 문득 흐릿해진 그, 헤일 수 없는 모습, 소리, 의미들은 난분분 내려 덮히는 하얀 꽃더미 속 어디쯤에서 지금 샤브작 지워지고 있을꼬! - 내게서 좀 떨어져 앉아, - 너를 곁눈질로 볼테니… - 그렇지만, 매일 조금씩 가까이 다가와! -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 길들이기 위해선 시간과 사랑이 필요해 - 잊지마,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이 있어 무게를 가늠키 어려운 달력을 ..

나무놀이 13 - < 델포이의 메아리 >

로마 국립박물관에 걸려있다는 1세기의 모자이크화 수 백년 문드러진 요람에 누워 풍화되는 백골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여전히 보내는 암호! - Gnothi Seauton!(그노티 세아우톤) -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16살 테세우스에게 운명의 질문을 던졌던 저 말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문 상인방에 새겨져 있단다 소크라테스는, 아포리아(aporia) 즉, 의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저 오래된 격언을 통하여 을 설파했다가 모함을 받았다. 경직된 사회적 율법 대신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이 불온(不穩)하다는 게 사형의 이유였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자신의 영혼이 가장 좋은 상태에 있도록 스스로 돌보게 설득하는 일’이 평생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 했다던 그의 말..

나무놀이 12 - < 須, 모름지기… >

앞뒤의 지나침과 그 밀도를 가늠할 수 없는 수밀도 같은 시간 틈새의 어떤 만남들은 온몸의 터럭들이 곤두서는 떨림으로 다가온다. 시인 김주대의 문인화집을 뒤적거리다가 까마득한 허공 중에 밧줄 하나로 목숨을 매단 저 빨간 조끼 사내의 작은 몸뚱이를 만났을 때, 어찌 이 바로 여기라는 시건방진 감탄으로 홀로 안달하더니… 에 수록된 長沙景岑 스님 게송 句 의 속뜻 찾아 다시 헤매다가 또 어찌 엉뚱한 손짓의 저 모퉁이에서 无爲堂의 얼굴蘭 그림에 쓰인 를 만났을꼬? - 百尺竿頭須進步 백척간두수진보 - 十方世界是全身 시방세계시전신 (无爲堂 戱) (백척 장대의 끝에서도 [모름지기] 더 나아가면, 시방세계의 전체를 볼 수 있다.) 키가 제법 크고 높은 산의 결을 가진 느티나무 골라 도대체 무게를 실감할 수 없는 사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