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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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의 마음드림

마음드림 23 - < 심고 베푸는 뜻은? >

石羽 2023. 6. 24. 20:10

경포호수 건너 야산 줄기의 불탄 흔적이
죽은 구렁이의 껍질처럼 시꺼멓게 내려앉고
무심한 계절은 진초록 바람으로 물 위를 지나는데

제 기운을 찾지 못하는 몸의 구석에서 보내는
통증과 경고의 신호에 마음마저 잔뜩 눌린 몇 달,
칼과 망치를 잡는 손 매무새도 많이 무디어졌나 보다!

- 種德施惠 종덕시혜

오래 묵은 菜根譚의 처세 警句를
그 의미만큼이나 묵직한 예서체로 눌러 쓴 지인의 작품,
하필이면 연하고 변덕 심한 편백 골라 새김 시작할 때
손끝에서 온몸으로 번지던 그 서투른 떨림을 어찌 잊을꼬!

그래서일까?
명나라 말기 홍자성(洪自誠)이 지은 이 어록집을
애써 뒤적거려 4字의 속뜻을 다시 읽게 된 것은…

- 平民肯種德施惠(평민긍종덕시혜) 평민이라도 기꺼이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면
- 便是無位的公相(변시무위적공상) 곧 벼슬 없는 재상이 되고
- 士夫徒貪權市寵(사부도탐권시총) 고관대작도 권세를 탐하고 은총을 판다면
- 竟成有爵的乞人(경성유작적걸인) 마침내 벼슬을 가진 거지가 되느니라

무릇 ‘심기(씨뿌리기)’는,
잘 가꾸고 길러낼 희망과 책임을 미리 품는 것이요
‘(은혜) 베풀기’라면,
그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는 무상보시(無相布施)의 의미일 터

낙낙한 계절의 섭리에 맞추어 제대로 씨 뿌려 본 적도
소중한 인연에 답하여 허허롭게 베풀어 본 기억도 없이
이리 아쉽게 쇠락하는 몸뚱이만큼이나 암울한 시절이 싫어

애써 소리죽인 칼끝과 더 짙게 넣은 먹물 속에
주제 모르고 망나니 칼질 서슴치 않는 뭇 권세들에게
머지않아 필시 <벼슬 가진 거지> 되고 말리라! 는
뼈에 새기는 필부의 경고를 깊숙하게 덮어두고,

묵직 차분한 글씨, 작품의 주인장에겐 그저
채근담 句의 의미와 어울리는 편백의 무늬 담아
조용히 건네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