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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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의 나무놀이

나무놀이 12 - < 須, 모름지기… >

石羽 2022. 10. 18. 22:28

앞뒤의 지나침과 그 밀도를 가늠할 수 없는
수밀도 같은 시간 틈새의 어떤 만남들은
온몸의 터럭들이 곤두서는 떨림으로 다가온다.

시인 김주대의 문인화집을 뒤적거리다가
까마득한 허공 중에 밧줄 하나로 목숨을 매단
저 빨간 조끼 사내의 작은 몸뚱이를 만났을 때,

어찌
<백척 장대의 끝(百尺竿頭)>이 바로 여기라는
시건방진 감탄으로 홀로 안달하더니…

<無門關 46則>에 수록된 長沙景岑 스님 게송 句
<百尺竿頭進一步>의 속뜻 찾아 다시 헤매다가
또 어찌 엉뚱한 손짓의 저 모퉁이에서
无爲堂의 얼굴蘭 그림에 쓰인 <須進步>를 만났을꼬?

- 百尺竿頭須進步 백척간두수진보
- 十方世界是全身 시방세계시전신 (无爲堂 戱)
(백척 장대의 끝에서도 [모름지기] 더 나아가면,
시방세계의 전체를 볼 수 있다.)

키가 제법 크고 높은 산의 결을 가진 느티나무 골라
도대체 무게를 실감할 수 없는 사내의 작은 몸 새기며
소심한 작업 내내, 몇 번이나 비척거리는 마음걸음으로
<進一步>와 <須進步>사이의 결을 가늠하곤 했더라!

- 須 : 모름지기, 마땅히

그냥 한 걸음을 내딛는 게 아니라
백 척 장대의 끝, 허공 중에 길을 찾는 삶이라도
모름지기,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인천의 28층 높이 아파트에서 외벽 물청소하던
30대 일용직 근로자가, 지지하던 밧줄이 끊어져
지상으로 추락했다는 뉴스가 바람처럼 들리던 날,

온몸을 관통하던 떨림이 스산하던 마무리 뒤에도
허공 중에 <모름지기 한 걸음 내딛으면> 보인다는
참 깨달음의 시방세계가 어떤 곳인지…

나는 모르겠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