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안되는 담묵 필선으로 그린 한 포기의 蘭,
잘 그리려고 애쓴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붓 가는대로 맡겨진 蘭 모습의 흔적…
부실한 蘭 주위 여백에 추사 특유의
강건 활달하고 서권기 넘치는 필체로 써넣은
한자 제발이 네 개나 빽빽하게 붙어있어
흔히 말하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예 작품인 것처럼 보이는 괴팍한 작품이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서각으로 새겨보는 일은
평소에 푹 빠지듯 덤벼드는 속도를 낼 수 없어서,
두 주일 이상을 또닥거리며 천천히 흔들릴 수 있었더라!
허술한 담채의 蘭 이파리 끝에서 심기 불편했고,
괴기한 추사체의 화제를 한 글자씩 두드려 새기고
확대경까지 동원해 먹을 넣고, 또 칠하면서…
‘不二’나 ‘維摩의 沈默’과 같은 경지를 말하고자 했던
秋史의, 어쩌면 오만함을 넘어선다는 그 당당한 書卷氣를
손끝만큼이라도 체감하기를 얼마나 부심했던가!
제법 뻐근했던 작업을 마치며,
오래 묵혀 준비한 단풍나무, 그 화면 전체에
어느새 축축하게 채워진 또 다른 기운을 느끼며
추사 김정희의 남다름을 희미하게나마 배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인간의 사악함과 오만함을 비웃는 저녁
또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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