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혜란의 영화, <내 이름은>을 보고 온 날,
그가 기억하는 바람 넘치는 청보리밭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바다 밑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어쩌면 귀에 익은 묵직한 두런거림을 들었다
-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
애원하는 몸, 껍데기를 버린 달팽이의 몸,
피인지 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끝없이 새어 나오는 칼날 위의 고통으로 썼다는
작가 한강의 눈물겨운 독백이 또 메아리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행동하는 자들이 아니라,
겪는 자, 참는 자, 묵묵히 흡수하고 감수하는 자,
곧 <감당하는 자>들이라는 어느 묵시록처럼
그렇게 세상의 무게를 견디다가 죽어간 그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아 있는 자들의
분노와 부끄러움에 찌들어 가난해진 영혼을
오래 묵은 암흑에서 건져내고 있는 건 아닐까?
- 작별하지 않는다!
꽂아두었던 한강의 책들을 다시 뒤적거려
견고하게 접혀 있는 갈피마다 짙게 울리는 소리,
더 깊어져야 할 애도와 위로 담은 태양꽃 기도를
단단한 매무새 산벚나무 결을 헤집어 새겨둔다
- 세상 모든 것들을 생생한 눈으로 사랑하는 법을,
살아 있는 동안 잊지 않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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