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온몸과 마음이 구겨지고 접혀서
시퍼런 영혼이 하얀 뼛가루처럼 흩날리는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암울했던 한 시절, 나는
이 땅에 스스로 두 발을 딛을 힘을 박탈당하고,
행성 밖 어두운 허공 속 가느다란 실 끝에
간신히 매달려 숨 쉬는 풍선 같은 운명이라고…
병든 일상에서 겪는 낯섬과 부조리에 대하여
온갖 분노와 서러움의 저주를 웅얼거리며
그나마 소중했던 신념과 인연을 갉아먹고 있었다
한참 후, 장자 연구가 정용선이 찾아냈다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 한 구절은 그야말로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가슴을 찌르는 것이었다!
- 썩어 없어질 두 다리로 무엇 때문에
- 이렇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냐
해결을 위한 선택의 여지조차 없을 때 귀결은 오직
<부조리를 벗어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버티는 것>,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그의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이고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없다>고…
그리고도 한세월 물결 속에 오락가락 깨우쳐 준
<虛心>의 莊子 할아버지와 하이데커의 <던져진 것>,
고매한 스님들의 <가지고 나온 업> 얘기도, 모두
<자신에게 던져진 삶을 껴안고 가라>는 당부였더라!
이른바 <水波不二>, 물결과 바다가 다른 게 아니니,
보잘것없고 고통과 혼란에 빠져 있는 내 삶 역시
크게 보면 진리의 바다에 속하는 하나의 물결이리니…
나와 타인의 삶,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만나는 인연사든 만날 만해서 만난 것이고
겪을 만해서 겪는 것이니, 그저 큰 바다 물결로 보라고!
그런데, 이건 또 어쩌겠는고?
초등 5학년 아이와 함께 읽던 <미하일 엔데>의 걸작
<끝없는 이야기> 속에서 만난 늙은 버세는, 내게
이런 수파불이의 둘도 없는 징표가 되고 말았으니…
암탕나귀와 수말 사이에 태어난 1새대 잡종 <버새>는
암말과 수당나귀 사이에 태어난 <노새>와는 달리
체격도 훨씬 작고 힘도 약해 실용성이 훨씬 떨어지지만,
이 책의 주인공 바스티안을 태운 늙은 버새 이하는
타고난 방향 감각으로 끝까지 길을 잃지 않는
독특한 현명함으로 이 백수를 은근히 감동시키더라!
그래서 더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퍽 아껴두었던 고급진 나무 아카디스를 골라
<버새의 눈물>이라고, 담담하게 새겨 두었다
- 水波不二
- 어느 물결인들 파도 아닌 게 있으랴,
- 버새는 자주 울지만,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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