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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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의 나무놀이

나무놀이 38 - < 虛空尸居 – 무위당의 가을 >

石羽 2025. 10. 4. 13:52

여덟 권을 넘나드는 无爲堂 서화집에 매달려
간곡한 경고, 혹은 뼈를 때리는 가르침을 골라
서툴고 투박한 칼/망치질로 몇 해를 지나면서
어쩌면 함부로 얻은 허허로움으로 꽤 편안했더라!

구름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청룡이 그려진 듯한
둥근 청자 도자기 그릇에, 그가 덥석덥석 써넣은
四溟堂의 偈頌을 제대로(?) 읽어낼 때까지는…

- 虛空尸居觀衆妙 天香桂子落紛紛
  (허공시거관중묘 천향계자낙분분)
- 허공에 시체처럼 누워 여러 묘체를 바라보니
- 하늘에는 향기로운 계수나무 열매가 흩날려 떨어진다.

둥근 은행나무 안둘레에 애써 그릇 테두리 만들고
투박하면서도 섬세하고 자유롭기 그지없는 그 서체를
습관 되어버린 추모의 기도처럼 새기다가, 문득

<虛空尸居>라는 詩的 느낌이 너무 가슴을 때려
사명당의 원작을 뒤적거려 게송 전문을 읽는 순간
‘아 ~’, 그저 길게 또 길게 탄식하고 말았다!

- 虛室戶居觀衆妙 (허실호거관중묘)
- 빈 방에 앉아 묘한 이치를 바라보니

분명 사명당의 게송엔 <빈 방에 앉아> 있는데,
무위당은 이미 <허공에 시체처럼 누워> 있단다!

아직도 무위당을 잘 모르는 필부의 착각일까?
서둘러 전문가의 도움으로 그 故意를 확인한 뒤
거침없는 영혼의 붓놀림에 다시 몸서리치고 말았다

<무위당의 가을>은, 그저 고즈녘한 빈 방에 앉아
세상 묘한 이치를 스님처럼 그윽히 보는 게 아니라
<허공에 누운 시체처럼> 고통스러웠던 것이었던가!

혹독한 가뭄의 아픔을 갖가지 양태로 겪어내던
이 마을, 이 도시, 이 나라의 사람, 사람들…
그럼에도 엄연하게 다시 돌아오는 계절, 가을…

낯설었던 절망과 갈등의 갈피에서 퍼득거리던
어색한 언어, 부끄러운 몸짓은 벌써 다 잊은 듯
온 사방이 요란하게 저들의 한가위 달을 키운다!

아서라,
작은 은행나무 달덩이 하나 새겨 걸면서
무위당의 어둡고 쓸쓸했던 낙분분 가을을
필부의 가슴으로 나직하게 되새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