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알 수 없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어느 순간 하늘보다 커다란 <엄마>를 잃고,
공포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한 이라크 소녀가
땅바닥에 백묵으로 엄마를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모태의 모습 그대로 조그마하게 웅크리고 잠이 든…
가슴 밑바닥을 면도칼처럼 헤집고 지나가던
그 사진 한 장은, 그 후로도 몇 해가 지나도록
세상의 곳곳에서 쉴 새 없이 전쟁이 터질 때마다
점점 두터워지는 그림자처럼 선명해지기만 하더라!
누군가, 전쟁이란 평화로부터의 비겁한 도망이라고
어렵지 않은 말로 해석하고 경고도 하더라만,
극한을 넘어서는 어른들의 탐욕과 광기, 파괴로
견딜 수 없는 공포와 배고픔에 헤매다 죽어가는
저 작은 아이들은 누가, 어떻게, 얼마나 품을꼬?
어린 몸으로 견뎌야 하는 세상이 온통 비어 있을 때
자신에게서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의 의미를
헤아리거나 대처할 수도 없는, 저 <幼年의 상실>은
영원히 바닥에 닿지 못하는 추락의 근거가 되고 말게다!
간단없이 온몸에서 버릇처럼 솟아나는 <그리움>,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 간절해지는 보고픔, 그 쓰라린 울렁거림을…
감히 몸으로 함께 짐작하고 눈물로 흔들리는 사람,
더 어린 시절 사라진 엄마, 안개보다 흐린 그 기억만으로
여태 살아있는 필부의 손으로 이렇게 새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마음 탄탄한 말들을 찾아
사라진 엄마의 모습을 자기 손으로 그려낼 줄 알고
신발 벗고 그 안으로 스스로 찾아 들어간 아이에게
변증법적 상상력이라는 특별한 응원의 손짓을 보낸다
- 잊어버림으로써 기억한다
- 남겨진 것은 반드시 사라진 것을 함축해야 한다. <한강>
또 참을 수 없는 가난한 분노의 한 마디,
참혹한 전쟁놀이에 여전히 무책임하고 비겁한 어른에게도
오늘도 살아있는 <헤밍웨이>의 무거운 경고를 보낸다
- 세상은 모두를 망가뜨리지만,
- 그 자리에서 강해지는 사람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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