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점점,
온전한 눈과 생각으로 오래 버티고 앉아
책을 읽는 게 몹시도 힘들어지고 있다
달짝지근한 흔들림으로 잔잔히 스미는가 하면
잘 벼려진 비수처럼 광폭하게 저미기도 하다가
다시는 들어낼 수 없는 바위처럼 박히기도 하는데…
지난 겨울부터 아예 화장실 고정 도서로
몇 번이나 되뇌이며 뒤적거리는 단상 모음집,
김홍중의 [은둔기계] 는 어쩌면
온갖 자갈이 들러붙어 생긴 커다란 역암 절벽 같다!
- 나는 은둔한다. 고로 그(것)들이 존재한다!
고상한 탈속이나 정신의 세계 도피가 아니라
시대의 한복판에서 미시정치적 실천을 가리키는
은둔기계는, <거리>를 새로운 삶의 원리로 삼고,
기존의 경계 너머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의 배치를 바꾸어
생명을 필사적으로 재조립하는 <생존주의자>
확보된 은신 속에서 노동하고, 생각하고, 산책하고,
읽고, 쓰고, 견디고, 저항하고, 소통하고, 창조하며
박제된 생을 파괴함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관리하는
그 반골성의 실천 논리는, <退/殘/忍/創>이란다!
- 退 : 물러난 자는 스스로 하찮음을 책임져야 한다.
- 殘 : 자기 삭감으로 힘을 응축시키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 忍 : 불행이 지나간다는 것을 믿을 때 견디는 것이 가능하다.
- 創 : 응축시킨 힘만이 역사의 파괴적 작용을 뚫고 나간다.
죽을 수 없어서 언제나 슬그머니 달아나는 겁쟁이 사상,
그 진정성의 무게를 담아낼 만한 나무를 고르다가
오래전에 손질하여 묵혀둔 어두운 물결 <월넛>에
경주마가 남긴 <말발굽 편자>로 네 개의 동굴을 파고
흙먼지 모래바람 속을 질풍처럼 휘몰아치던
이름도 모르는 그 말(馬)의 피땀 어린 발굽 소리 끌어안고
욕망하지 않는 것과 연결을 끊은 자만이 확보하는 자유,
고독한 은둔의 논리 4字를 견고하게 새겨 둔다!
또 다른 생성과 더 많은 연결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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