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지 않는 필부에게도
예수의 언어는 언제나 가슴에 꽂힌다
어쩌면
모든 가르침과 행적, 고뇌가 실패한 자리,
응답조차 없는 완벽한 절망의 자리인 십자가와
약속되지 않았던 부활 사이의 절대적 거리가
한 인간에 의해 가로질러졌다는 깊은 감동 때문일까?
<뒷것 김민기>의 얘기가 새삼 무성해지던 한동안
앉으나 걸으나 그의 노래 <금관의 예수>를 들으며
새삼 세상과 함께 울 줄 아는 통곡의 근본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전에 감히
면류관의 예수 초상을 새겨 드린 적 있는
작은 교회 젊은 목사에게 물었다,
가슴에 언제나 품고 사는 성경 구절이 어떤 것이냐고?
-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로마서 12:15]
그리고, 글씨 즐기시는 또 다른 목사에게
그 의미 담은 글씨체로 써 주십사 부탁드렸더니,
<우는 자>를 <우는 이>로 바꾸어 보내왔더라!
몇 해 잘 묵혀두었던 결 고운 느티나무 깊숙히
면류관도 금관도 없는 <무관의 사람, 예수>로,
두 분 맑은 믿음과 기도의 힘 빌어서 새겼다
혐오와 불신이 대책 없이 번지는 세상
도처에서 깊어지는 약한 자와 없는 자의 신음에
함께 울어 줄 필부의 파랑새 두 마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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