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방이
이기려는 자, 누르려는 자, 오르려는 자들로
뼈 마디가 부러지고 살점 문드러지는 소리 가득한
암울한 나날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어지러운 심사로
버릇처럼 자꾸 뒤적거려 보는 무위당 서화집…
그의 붓꼬리에 잠긴 분노와 애닮음을 다시 읽는다
서서히 뒤통수가 땡기는 써늘한 느낌,
무언가 허공 속에서 차곡차곡 무너지는 듯
거칠고 위태로운 자태의 글자 하나,
- <無>
- 집이 다 탄 모양이다!
하늘이, 지붕이, 기둥이, 구들장이, 주춧돌까지,
피땀으로 짓고, 살다가, 혹은 죽은 사람의 냄새까지도
하얗게 타버린 저 집(글자 無)이 내게 건네는 의미는
애초에 생겨났던 무엇이며, 결국 남아 있는 무엇일까?
- 자기 안에 존재하지도 않고, 머물면서 지속하지도 않는다!,
- 자기 속이 비어 있는 듯, 아무도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되돌아 간다!
- 그래서, 모든 것의 통일체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는…
무심한 세월 바람결에 귀동냥해 온 <무>,<無>,<无>
그 넓이와 깊이를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념에
속절없이 자꾸 파내고, 먹을 넣던 은행나무, 그 얼룩 결 따라
비틀거리며 내 온몸을 통과하는 침묵의 그림자만 섬뜩하다!
無我 (아무 것도 아닌 者)를 노래했다는
바쇼의 하이쿠 한 절을 애써 찾아 둔다
- 첫 눈이 내릴 때
- 수선화의 꽃잎은
- 오그라들기도 합니다

'석우의 나무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무놀이 21 - < 庸詎知 – 네가 어찌 알겠느냐? > (0) | 2024.06.05 |
|---|---|
| 나무놀이 20 - < 필경사 바틀비 – 아, 인류여! > (0) | 2024.04.18 |
| 나무놀이 18 - < 나무거울 – 돌의 肖像 > (0) | 2023.10.23 |
| 나무놀이 17 - < 다시 ‘밥’– 허기진 세상 > (0) | 2023.09.03 |
| 나무놀이 16 - < 가로등지기 – 아름다운 직업 > (0) | 2023.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