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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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우의 나무놀이

나무놀이 11 - < 지워지는 그림 >

石羽 2022. 10. 3. 23:18

거의 진회색이 되어버린 하얀 장갑 실밥이 터지도록
온몸 온마음으로 고된 하루를 퍼담고 또 퍼내던,
헐렁한 함지박 하나, 아슬한 줄 끝에 목숨처럼 매달고

거칠게 따라오는 시멘트 길바닥의 비명까지도
단호한 각도로 접은 허리 힘으로 자근자근 밟으며
나지막한 바닷가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어미의 뒷모습...

이윽고, 자지러지던 석양이 사그라지는 길의 끝에서
잦아드는 함지박 끌리는 소리, 희끄무레한 점으로 그가 사라지면
저무는 길도, 바다도 서서히 나무결 속으로 스며들고 지워지는...

그런 그림 한 점,
저 허리 휘는 세월 내내 세상 인연에 원망 보태지 않고
온갖 생각 하지만 어떤 생각에도 걸리지 않는 어미 마음을
이 귀하게 얻은 <홍자작나무>에 새기고 싶었다!

- 不昧因果 (불매인과)
-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일체 인연이 한 法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이미 밝은 것이니,
세상 일고 스러지는 법에 맡겨, 오고 가는 인연따라 살면
몸은 비록 인과에 떨어지더라도 마음은 인과에 걸리지 않는단다!

그러니 어쩌랴?

- 應而不藏 (응이부장)
- '오는 대로 반응할 뿐 (앙금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는다’

莊子가 말한 至人(지인: 德이 극치에 이른 사람)의
거울 같은 마음씀도 곧
세상 모든 어미의 헐어진 속마음 그것이요,

- 만물을 낳았으나 소유로 삼지 않고,
- 스스로 한 바 있지만 능력을 뽐내지 않으며,
- 만물을 길러 주었으나 아무 것도 거느리지 않는다

老子 道德經 10장에 들어있는 성인의 현묘한 德조차도
단호하게 접힌 허리로 천연덕스레 오늘의 끝을 끌고 가는
저 어미의 함지박보다 더 크고 묵직하지는 못할 것을...

유난히 하늘 고운 가을날,
살아서 만난 온갖 모진 고뇌와 남다른 아픔을
오래 전 <만다라> 속에 풀어놓았던 소설가가
그예 이승을 떠나던 그 날 저녁 늦게...
이 새김 작업(刻) 마무리했음을 굳이 기억해 둔다!

         ** 노인의 이미지는 '최필조'의 사진책에서 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