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석우의 마음드림

마음드림 09 - < 천천히 가는 삶 >

石羽 2022. 4. 14. 22:53

금방 읽은 앞 페이지를 잊어버려

몇 번이고 책장을 다시 거슬러 넘겨야하는,

엄청나게 둔하고 느려진 독서력에 매달려

'절멸의 수용소' 안을 퍽 여러 날 헤매다가...

 

전혀 다른 색깔의 나무 작업 하나,

뾰족한 칼끝으로 그 무딘 조바심을 깎아내면서

겨우겨우 312페이지를 넘어갔다

-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ㅡ

 

언제나 생활의 모든 구석까지

소박하면서도 반듯한 차분함을 지키면서

별장(?)이라고 불러도 좋을 농막 하나 지어놓고

퇴직 후의 여지를 유감없이 소요하는

 

은발 농부의 농막에

그가 지은 이름 < 漸徐園 >을 되도록 찬찬히

'마왕퇴금체'로 새기고, 가족의 부탁대로

한글 부제 - 차근차근 천천히 - 를 붙였다!

 

부실한 솜씨의 현판 하나 달랑 걸어주고는

과분한 점심 접대와 패거리 담론 즐기다가

싱싱한 쌈채까지 푸짐하게 얻어 돌아온 저녁,

느슨하게 풀어진 눈으로 冊을 마져 덮었다

 

일체의 허구와 인용도 없이

직접 경험한 사건들만을 엄격하게 옮겨놓음으로

오히려 더 크게 흔들리고 깊게 파헤쳐진

내면의 房에는 아우슈비츠의 피비린내가 흥건하게 흐른다!

 

-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자기를 잃는 건 쉬운 일이다

 

- 슬픔과 아픔은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이 신의 섭리이며,

-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이성과 다른 도구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앞세워

-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되다

 

- 벌어진 일에 대해 숙고하는 건 우리 모두의 임무다!

 

(2020.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