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게으름의 본색이 완연해지는데다
이제는 쉽게 지치는 몸뚱이의 신호인지…
한동안 빈 나무만 만지작거리며 손을 쉬었다
그렇게 잘못 쑨 묵 덩어리처럼 어정쩡하던 어느 날부터
속절없는 늘어짐에 작정하고 반기를 드는 심사로
길이 100 cm, 폭 37cm 대형 은행나무와 어울렸다!
진즉에 별러오던 무위당의 <金剛經 五家解義抄> ,
73자와 은행나무의 어울림을 이리저리 고심하다가
결국 아까운 폭 5cm의 여유를 뼈아프게 잘라내고 말았다
- 苟達無我則爲人輕賤 猶爲法樂法無彼此
( 진실로 무아에 도달하면 남이 경시하고 천하게 여겨도
오히려 법을 즐기게 되니, 법은 피차가 없기 때문이다. )
- 見起我人有我人 起業造罪罪業相形
( 소견으로 생각을 일으키니 따라서 나와 남이 있는 것이다.
업을 일으키고 죄를 지어서 죄업이 서로 형상을 이루어 )
- 障菩提路欲成菩提 先除罪業欲除罪業 先斷我人
( 보리의 길을 막는 것이다, 보리를 이루고자하면,
먼저 죄업을 제거하고, 죄업을 제거하고자하면,
먼저 나와 남이란 생각을 끊어라! )
걸어야 할 길, 닿아야 할 곳, 그 없음의 요체를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담백하게 金剛처럼 눌러쓴 글씨...
그저 무망한 마음 손짓으로 눌러 새기고, 먹을 넣었다!
허리펴고 몰아쉬는 큰 숨소리보다 더 익은 계절
따갑게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필부의 시간은 접히는데
아직 나와 남의 구분을 지우지 못하는 날이 또 저문다!
세번째 마무리 칠을 끝내고 몇 걸음 물러서는
허술한 백수의 엷어진 귓가에
고운 나무결 길게 잘려나가던 전기톱 소리가
하얀 비명처럼 자꾸 되감기는 건
어디로 가라는, 무슨 신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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