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의 무게가 서푼어치 가죽주머니 같을 때
오래된 버릇처럼 뒤적거려 보는 <般若心經>,
못난 자아의 실체 없음을 체감하고자 온 마음 써도
여전히 어린 아이처럼 온몸을떨며
보이지 않는 사다리, 가로장 너머
'초월의 門'만 안개 속에 그려보다 만 날들…
그 판국에 무딘 칼질로 무위당을 새기다가
이번엔 아예 <心經>의 글자 하나에,
- 行深般若波羅蜜多時
의 '때 時'의 현묘한 의미 풀이에
더 짙은 안개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800여 년 전 중국 송나라 때
'요통(了通)' 스님이 깨달음의 경지에서
반야심경의 한 글자, 한 단어를 일일이 풀어낸
독특한 주석에서 꺼냈다는 '때 時'
- <時>란 바로 보는 때인데
- (오히려) 한 터럭도 볼 수 없고,
-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이 허공처럼 평등하다.
- 위로 쳐다보아도 집어 들어 볼 것이 없고,
- 아래로 몸소 실행해 보아도 나조차 없어져버리고 마니,
- 깨달음의 경지는 획득할 수 없을 만큼
- 현묘하고 또 현묘한 경지로 유와 무 양쪽이
- 평등하게 함께 귀일하는 <때>로구나!
깨알같은 글씨들을 두드리던 칼을 멈추고
아물하게 시린 눈을 들어 본 창 밖에
문득 잊었던 얘기처럼 이슬비가 내린다
연하게 흔들리는 대나무 이파리에도
봄은
벌써 깊게, 푹 익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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