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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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 살어리랏다.../초당별곡(2016.9)

초당별곡 189 - 영화보다 멋진 만화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

石羽 2018. 10. 4. 23:00


산호의 라이파이, 박기당, 박기정 등에 매료되어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어쩌다 생긴 용돈 몇 푼을,
아침밥도 걸르고 쫓아간 만화가게 주인에게 주고


구석진 판자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슬쩍슬쩍 주인의 눈을 속여 책을 바꾸고
빼곡한 사각의 그림과 이야기에 침몰하다가...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는 주인의 호통에 쫓겨나
낡은 유리문 밖으로 나서면, 시장 거리 가득 어스름,
하루 띵겨먹은 학교와 찰진 허기만 밀려오는데


둘러대야 할 거짓말보다, 꼬로록 배고픔보다
더 무섭게 걱정되는 것은, 또
문둥이 사는 서낭당과 귀신나무 벌판을 지나서


등에 매달린 책보, 삼촌한테서 얻은 나무 필통 속에서
죽어라 달각거리며 뒷통수를 쫓아오는 몽당연필 소리
그 시커먼 공포에 징징울며 적어도 오 리를 뛰어야
겨우 우리 동네 입구 쩔룩발이 집이 보이곤 했더라!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도 드러운 세상 저 편으로
혼자, 굶어도 더 재미있고 뭉클해서 아름다운 것들
멋대로 그려내는 만화가가 되고 싶어 안달하던
찌질이 국민학생은, 결국 국민학교 선생이 되었다!


어지간한 소설, 영화를 훌쩍 넘어서는
섬세한 그림과 깊은 스토리텔링으로 감동을 주는
일본 만화에 맥없이 박수만 치기를 수 십년...


1995년에 출판되었다가 절판, 2001년에 복간,
그러고도 절판되었다는 '오세영'의 만화 단편집
<부자의 그림일기>를 중고 책방에서 구했다!


ㅡ 엄격한 객관주의 속 투명성의 극치
ㅡ 구조적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주의의 일관성
ㅡ 미분적인 분석을 복선으로 까는 극적 전개


고도의 문학성과 회화성에 영상미까지를
영화도 아닌 만화에 쏟아넣는 저항적인 실험,
드물게 만나는 감동이 오래 마음 떨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