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은 <인디언>이 아니다!
북미 원주민,
그들 스스로가 불리우고 싶어하는 이름이란다!
또 다른 '그들(이주 백인)'의 손으로 자행되어 온
오래된 원주민 말살과 그에 대응한 처절한 몸짓들,
검은 언덕에 묻힌 그들(원주민) 영혼은 더 말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호'라는 미명 아래
거친 땅을 구획짓고 '감금'한 <인디언 레저베이션>
영화 '원드리버'는
황량한 보호구역 동토의 강가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북미 원주민의 딸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백여 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태의 스토리로 끊임없이, 여전히 드러나는
퇴락한 인종우월주의의 뻔뻔스런 민낯을 다시 본다!
첨단의 시대, 민주와 인권의 그 나라
ㅡ 지금까지 인구 통계에 잡힌 실종자 수치에는
ㅡ 아메리칸 원주민 여성들은 집계된 적이 없다
ㅡ 그 실종자 수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말미의 자막 몇 줄이
내내 치밀어 오르는 걸 참고 보던 내 속을
기어코 울컥 뒤집어 놓고야 만다
이 시대, 그런 나라, 어느 구석,
땅과 영혼을 빼앗긴 그들의 이야기 또한
먼 가슴 아리도록 눈물겹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 초당별곡(2016.9)'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당별곡 176 - 늦어버린 초대 <연극 '오래된 편지'> (0) | 2018.10.04 |
|---|---|
| 초당별곡 175 - 또 다른 선물세트 <"시대의 음악, 삶의 풍경"> (0) | 2018.10.04 |
| 초당별곡 173 - 재즈로 풀어가는 공감 나눔 <공존의 하모니> (0) | 2018.10.04 |
| 초당별곡 172 - 행복한 아침 <아카펠라 '별의별'> (0) | 2018.10.04 |
| 초당별곡 171 - 피서(避書) 의 辨 <隨處作主의 되새김> (0) | 2018.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