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나래

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허공 중에 떠도는.../글 나부랭이

청량리 - 김명기

石羽 2018. 11. 14. 20:17


듬성듬성 심은 자작나무 그늘 아래
사내 몇이 잠을 청한다
덜 취한 몇은 남은 술병을 기울이고
아이들은 작은 돌을 던지며 비둘기를 쫓는다
익명의 절망들이 모여 이런 평온한 풍경이 되다니


인도에선 부랑아도 신비롭다던 말을
면전에서 비웃은 적이 있다
그렇게 부러우면 신비롭게 살든가


그땐 알지 못했다
혀끝에 담지 않고 뱉어낸 말에서
모든 비하가 기어 나온다는 것을
부랑아와 당신 그리고
먼 나라의 알 수 없는 신비까지 참 무참 했겠다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청하는 사내들과
무심히 술병을 기울이는 그들과
비둘기를 향해 날아가는 작은 돌까지
부랑의 곁에서 당신도
누군가를 비하했던 순간을 생각했을지 모르는데


오래 입은 속옷처럼
자취라는 말을 버릴 수 없어
몸이 기억하는 시간 속으로
쓰러지지 않으려 휘청 거리며 견디는 생들이
안쓰럽다 못해 신비하다
그날 당신이 성내지 않던 이유를 비로소 알겠다

더는 멀리 갈 수도 없는
이승의 한 귀퉁이를 껴안은 채
간신히 늙어가는 사내가
받던 술잔을 떨어뜨리며 제 그림자 위로 포개진다


                                                             - 창비 201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