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태어나 처음 먹는 것은 젖이다. 약간 달고 짠맛이 있으며 비릿한 냄새가 난다. 결코 맛있다고 할 수 없다. 아이의 입에도 마찬가지일 터인데, 젖을 뗄 때이면 아이는 뒤집어진다. 세상에 태어난 후 가장 큰 목소리로 울부짖는다. 방바닥을 뒹굴고, 심하면 벽에 머리를 찍는 등 자해를 한다. 젖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한다.
어미는 자식에게 젖만 물리지 않는다. 깨질까 날아갈까 살포시 품에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고 배냇저고리 속 손발을 꺼내 만져보고 입에 넣어 앙앙거리기도 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옹냐옹냐 어룬다. 젖과 함께 “내가 너의 생명을 지켜줄게” 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그렇게 보낸다. 젖 먹는 아이도 어미의 이 사랑을 안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는, 가장 완벽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이도 안다. 동물학자인 데스몬드 모리스는 어미와 자식 간에 일어나는 이 일을 두고 ‘완벽한 접촉’이라 표현하였다. 젖떼기란 바로 ‘완변한 접촉’, 즉 사랑이 제거되는 일이니 아이는 목숨을 걸고 매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처음 먹는 것은 사랑이다.
젖을 떼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미는 젖을 대신하는 음식으로 사랑을 유지한다. 밥알을 꼭꼭 씹어 입안에 넣어주고, 생선살을 발라주고, 채소와 과일을 갈아 먹인다. 스스로 수저질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면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며 먹인다. 웬만큼 자라 동네방네 친구들과 돌아다니는 나이가 되었어도 어미는 끼니를 꼭 챙긴다. 해질 녘에 골목길에서 듣는 “얘들아, 밥 먹어” 하는 소리에 담긴 사랑은 이 세상 모든 어미의 것이 똑같다.
동물은 새끼를 웬만큼 돌보고 난 다음 스스로 먹이 활동을 하게끔 독립을 시킨다. 포유류 동물인 인간도 똑같다. 문명을 이루기 전 수백만 년간 원시생활을 하였던 우리 조상은 대충 일곱 살에 그 독립을 이루었던 것으로 짐작을 한다. 그 흔적이 ‘미운 일곱 살’로 남아 있다. 이때에 이르면 어미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려 들지 않는다. “내가 먹을래” 하고 고집을 한다. 어미도 아이를 밀어낸다. 아이에게 처음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심지어 매를 드는 시기가 이때이다. 이 기간을 ‘심리적 이유기’라고 표현한다.
원시인으로 살았던 수백만 년 동안의 인간은 먹을거리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가리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필수 지식이었다. 자식을 독립시키기 전에 어미는 이 교육을 하여야 하고, 그 기간이 일곱 살까지이다. 자식은 어미가 주는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지식을 쌓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어미가 거두어 먹이는 일곱 살 때까지의 음식으로 한 인간의 음식 기호는 결정된다. 그러니 인간의 음식 기호에는 제각각 어미의 사랑이 낙인처럼 박혀 있다. 인간이 한평생 먹는 것은 바로 어미의 사랑인 것이다.
우리가 문명을 이루고 산다 하여도 수백만 년 이어온 생존의 본능, 즉 음식을 매개로 어미와 자식 간에 얽힌 사랑의 본능은 지우지 못한다. 유전자에 박힌 사랑이다. 특별히 인지하지 못 할 뿐이지 음식 앞에서 우리는 항상 이 사랑을 확인한다. 엄마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이면 “엄마가 해준 밥 같아요” 한다.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자식은 어미를, 어미는 자식을 떠올린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세월호 침몰로 수백 명의 자식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어미는 밥을 넘길 수가 없다. 거두어 먹여야 할, 사랑하는 자식이 어둠과 추위에 갇혀 물조차 먹지 못할 것인데, 어찌 밥알 한 톨인들 삼킬 수 있겠는가. 어미를 지켜보는 이들의 심중도 다르지 않다. 본능의 사랑이 무너져 울부짖는 어미 앞에서 음식이 당길 리가 없다. 인간이면 당연한 일이다. 그 자리에서 라면을 먹는 이가 있었다. 자식 잃은 어미 앞에서 보란 듯이. 짐승의 마음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임에도, 세상에,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이라니! 수백만 년 이어온 인간 교육의 근간인 사랑을 그 라면 하나로 말아먹고 있었다. 강탈당한 사랑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사랑이 없으면 나서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인간이고자 하면.
- 황교익/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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